종교개혁으로부터 현대까지 삼위일체는 개신교, 카톨릭, 러시아정교 등 모든 기독교의 주요 교단 신학의 한 중심으로 남아있으며, 근대 이후 복음의 전파로 설립된 제 삼 세계 교회의 신앙 고백도 삼위일체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장로교회의 신조(1907)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에 대해
종교개혁자 루터라든가. 멜랑히톤, 에라스무스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을 따라 한 위대한 인물이 세상에 햇빛을 보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칼빈이었다. 칼빈은 본래 프랑스 북쪽 피카르디 지방에 있는 노욘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제랄코반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2세 때 아버지의 영향력에 의해 노
Ⅰ. 개혁파교회(개혁교회)의 의미
교회가 되기 위해 먼저 사람들이 불려야 한다. 사람들은 그냥 교회에 오도록 불리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린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도록 선포하는 것이 사람들이 부름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교회를 만드시기 위해 언제든지
Ⅰ. 개요
이 세상에는 말로나 입으로 다 설명(說明)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믿는 기독교(基督敎)의 진리(眞理)인 삼위일체교리(三位一體敎理)역시 인간의 지력(智力)으로 완전히 이해(理解)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교리(敎理)는 성경전서(聖經全書)에서
종교도 기독교만큼 논리적 논쟁과 이단적 견해를 산출해 내지 않았다. 역사적 기독교 교리가 실재에 근거해 있고 지적 이론에 입각해 있지 않다는 분명한 이유는 주요한 이단의 재발을 보아 알수 있다. 그 중 성삼위일체는 가장 열띤 논쟁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통은 이단보다 후기에 정의되었고 여
삼위일체론 외 무수한 저술을 통해서 처음으로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시켰다.
410년, 게르만계의 고트족이 서로마로 유입해 들어오면서 서로마는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러한 서로마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고트족과의 협상을 통해 자신들이 실시하던 감독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면
종교개혁 이후 3세기 동안 칼케돈의 교리들은 계속해서 기독론 정통의 시금석이 되었다. 오늘날 정통과 이단의 역할은 서로 교체되었다. 이단자가 되는 것은 멋지게 보이고 위험하지도 않게 보이지만 정통이 된다는 것은 별로 인기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신학이란 이단에 대한 반응이다. 하지만
옳소"라고 했단다.
어쩌면 위의 정승의 이야기처럼 하나님께서는 너도 옳고, 너도 옳다. 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사회의 환경이 느슨해짐에 따라 또다시 종교 다원주의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종교 다원주의에 관한 논의는 에덴동산에서 인류가 추방된 이후의 계속되는 논쟁일 것이다 .
지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종교 다원주의가 궁극적으로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전호진, 『종교 다원주의와 타종교 선교 전략』(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3, 43p)
본 고는 종교 다원주의의 이같은 맹점을 삼위일체론의 시각에서 비평하는데 목적이 있다.
전개 방법으로 전반부에 3-4세기의 삼위일체 논쟁(니케아 종교회의 전후)을 중심으로 삼위일체론의 형성 과정을 서술할 것이며, 후반부는 조직신학의 중요 주제들(신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 중 기독론을 강조하고자 한다. 삼위일체론은 개혁주의와 다른 교파들을 구별하는 중요한 신학적